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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지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누가 이름을 부르면 고개는 들었지만,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입을 열어도 그 말은 짧고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녹빛 곱슬머리는 언제나 부스스했고, 창백한 얼굴 위 청색 눈동자는 나른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런 거리감 있는 태도 때문인지, 같은 기숙사 학생들마저 리지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게다가 리지는 학교 안에서도 자주 눈에 띄지 않았다. 수업은 성실히 참석했으나 교수가 끝을 알리자마자 그림자처럼 복도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모습에 다들 의아해했다. 하지만 대연회장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아 식사를 이어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쟤, 유령이래.”

    “그림자처럼 사라진다니까. 뒤를 밟아도 늘 놓쳐버려.”

    누군가 리지가 떨어뜨린 펜을 주워서 뒤따라갔는데, 복도에는 이미 자신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미스터리는 더욱 짙어졌다. 가뜩이나 수상하다는 소문이 도는 와중에 출신을 암시하는 사소한 것들—머글 간식이나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 학생들의 눈에 띄었다. 순수혈통 중심의 슬리데린에서 이는 리지가 더 고립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슬리데린 휴게실이 크게 술렁였다.

    “레리의 고양이가 기숙사 앞 복도에서 쥐를 사냥 중이래!”

    “잡아먹히기 전에 알려줘야 해.”

    “리지였나? 걔도 쥐를 데려오지 않았어?”

    리지는 소문을 들었을 텐데도 휴게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옆 침대를 쓰는 학생이 혼자 남아 찍찍거리는 생쥐를 일단 챙겨 들었다.

*

    그 시각, 리지는 작은 네 발로 차가운 돌바닥을 내달리고 있었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이 뒤에서 들려왔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꼬리의 털끝까지 곤두섰다. 가득 찬 숨을 내뱉을 때마다 작고 하찮은 ‘찍찍!’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소문의 그 쥐가 바로 리지였다.

    ‘내가 왜 거기서 변신했을까?’

​​

    생각을 이어갈 틈조차 없었다. 좁은 벽 틈에 몸을 밀어 넣고 계속 달렸다. 복도에는 아직 학생들이 남아있었기에 섣불리 변신을 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벽 틈에서 빠져나온 후 고양이 를 따돌렸다고 안심하며 도서관 근처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순식간에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같은 기숙사 학생 레리가 키우는 검은 고양이 ‘봉봉’. 푸른 눈동자 속 검은 동공이 늘어나며, 흔들림 없이 눈앞의 겁먹은 쥐를 응시했다.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변신을 풀 것인가, 아니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 변신을 푼다면 엄청난 수치심과 소문이 뒤따르겠지만, 그렇다고 고양이의 발톱 아래 죽을 수는 없었다.

망설이는 짧은 순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누군가가 고양이를 낚아채듯 붙잡았다.

    “그만두렴.”

    봉봉은 아쉽다는 듯 ‘야옹’ 울고는 순순히 떠났다. 여전히 돌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리지의 작은 몸을 부드러운 손이 들어 올려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따듯했다. 이어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괜찮아. 많이 무서웠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단정하게 매듭지어진 파란색 넥타이였다. 시선을 올리자 동그란 녹색 눈과 이마를 반만 덮은 새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늘 책을 안고 다니며, 동물들에게 사랑받기로 유명한 래번클로 학생, 네르였다. 리지는 긴장이 풀리면서 손바닥 위에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꼈는지 네르의 다른 손이 몸 위로 부드럽게 포개어져 왔다. 그 따스함 속에서 리지는 잠에 빠져들었다.

*

    그날 저녁, 본의 아니게 리지는 래번클로 기숙사의 작은 케이지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깥을 돌아다니던 네르의 다람쥐가 낯선 손님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날카롭게 끽끽거렸다. 하지만 리지가 근처에 있던 도토리 하나를 들어 케이지 바닥을 내려치자, 다람쥐는 즉시 조용해졌다.

    “자… 그럼, 네가 무슨 쥐인 지 한 번 찾아볼까?”

    책상 한편에 쌓인 무거운 책들을 하나씩 들어 옮기며 네르가 말했다.

    『룬 문자 사전』, 『마법 상형문자와 기호』, 『스펠먼의 룬 문자 읽기』…

    리지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케이지 안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댔다.

    한참 뒤 네르가 집어 든 책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두꺼웠다.

    ‘『설치류의 세계』… 도대체 저런 책은 왜 가지고 있는 거야?’

    역시 래번클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리지였다. 책을 찾은 네르는 자리에 앉아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간결하게 책갈피를 끼우고,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펜을 찾아 쥐는 모습에서 네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끔 리지를 바라보며 책 속의 쥐 그림과 이리저리 비교할 때, 그 열정적인 모습에 리지는 애써 몸을 펴 자신을 더 잘 보이게 해주었다.

    “…찾았다! 너는 ‘북숲쥐’ 구나!”

    맞췄어! 리지는 작은 분홍색 코와 수염을 기쁘게 씰룩거리며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네르가 펼친 책 속에 리지와 똑같이 생긴 쥐가 그려져 있었다.

    “내일은 네 주인을 꼭 찾아줄게. 알았지?”

    네르는 두꺼운 책을 덮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피곤함에 젖어 있었다.

    ‘내게 주인은 없는데…’

    하지만 따듯하게 쏟아지는 시선에 리지는 어쩔 수 없이 꼬리를 감아 몸을 웅크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네르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오자, 리지는 조용히 움직였다. 다행히 케이지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작은 발로 문을 밀고 빠져나와 파란색 목도리를 타고 바닥에 내려온 리지는 그림자 속에 숨어 움직였다. 래번클로 탑에서 슬리데린 지하까지는 먼 거리였지만, 아는 길이었으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작은 케이지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덩그러니 남은 것은 이빨 자국이 남은 과일 조각 하나뿐이었다. 네르는 멍하니 그 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어디로 간 걸까…”

    침대 밑, 기숙사 주변 복도, 주방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N.E.W.T. 시험과 과제 이야기로 떠들썩했지만, 네르의 머릿속은 자꾸만 그 작은 북숲쥐로 가득 찼다. 결국 네르는 수색을 포기하고 교실로 향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집중하지 못했다. 마법약 제조 시간에는 다른 재료를 넣을 뻔하기도 했다. 다른 학생들의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너무 걱정돼.”

​​

    네르의 다람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망토 안에서 도토리를 깨물어 먹었다.

    깊은 밤이었다. 창문 밖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유리창을 흔들며 윙윙거렸다. 책을 덮고 정리하려던 순간 유리 너머에서 작은 그림자가 쓱 나타났다. 네르가 서둘러 창문을 열자, 덩굴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삐죽 튀어나왔다. 작고 촉촉한 분홍색 코. 그토록 찾던 북숲쥐였다.

    그 후로도 쥐는 가끔 찾아왔다. 찾아오는 시간대는 늘 조용한 밤이었다. 탑 위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 어둠이 내려앉는 무렵이면 창가의 덩굴은 흔들거렸고, 창문은 이미 작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만큼 열려 있었다. 네르는 어느새 그 순간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끊임없는 공부에 몸이 지쳐도 창밖의 바스락거림과 가느다란 발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영리하고 작은 친구와 네르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상관 없었다. 네르가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일장 연설을 하면 쥐는 앉은 채 꾸벅꾸벅 졸았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은 네르가 과일 조각을 내밀면 언제 졸았냐는 듯 우걱우걱 입에 넣은 뒤 더 없는지 눈을 빛냈다.

    늘 밤늦게까지 책 속에 파묻혀 지내던 네르였지만 북숲쥐가 찾아오는 그 시간만은 달콤한 휴식처럼 스며들었다. 친구들도 의자를 끌어와 앉고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애는 어디 기숙사야?”

    옆자리 침대를 쓰는 에디트와 프시케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네르를 바라봤다.

    “후, 후플푸프에 있어…”

    네르의 뺨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친구들은 함께 수줍은 웃음을 터뜨리며 침대 위에서 발을 굴렀다. 잠옷 자락이 흩날리고, 늘 조용하기만 하던 기숙사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리지 또한 쳇바퀴 위에서 헤이즐넛을 씹으며 그리핀도르에 있는 그 학생을 생각했다.

*

    며칠 뒤,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공부를 하던 네르는 뻐근한 눈을 문지르며 텅 빈 복도로 나섰다. 래번클로 탑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 어두웠다. 복도에 한 학생이 그림자처럼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부스스한 녹빛 머리카락과 초록색 넥타이. 며칠 전 대연회장에서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리던 리지라는 여자애였다. 복도에 홀로 선 리지는 마치 네르가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 청색 눈동자가 네르를 응시했다.

    “저기… 안녕? 곧 통금 시간이야.”

    네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지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손을 뻗어 받자, 어젯밤 북숲쥐에게 줬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산딸기가 놓였다. 곧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험 잘 봐.“

​​

    네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리지는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작고 붉은 산딸기. 달콤한 향기를 타고 기억이 흘러왔다. 며칠 전, 북숲쥐가 작은 두 손으로 산딸기를 소중하게 받아 들던 장면이 네르의 눈 앞에 일렁거렸다.

    두 소녀의 비밀스러운 우정은 새로운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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