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원의 방. 정식 명칭은 필요의 방이라지만 레예스는 그렇게 불렀다. 말로만 듣던 그 방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가는 방법은 잘 알고 있었다.
이루고 싶은 소원을 생각하면서 8층의 벽걸이 양탄자 맞은편의 빈 벽 앞을 3번 지나간다.
아, 지나가면서 노크라도 해야 했던가? 문을 열기 위한 어떤 특정한 시도를 해야 했나? 듣긴 많이 들었는데 영 똑바로 기억나지 않는 것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열리는 게 맞긴 하지?"
머릿속을 꽉 채울 만한 간절한 소원, 가장 중요한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주제에 레예스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이 방을 사용했던 작은 체구의 신입생은 이미 기숙사로 돌아갔다. 근처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기숙사까지 인도해준 사람이 레예스 자신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신입생이 처음 저지른 교칙 위반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물어보긴 했다. 뭐를 그렇게 원했는지, 그래서 들어간 방안은 어떠했는지.
'엄마랑 살았던 집을 닮았어요..'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았지만 일단 오늘의 방문객은 레예스가 다년간 들어온 소원의 방 체험 유형 중 두번째로 많은 유형에 속했다. 가장 많은 건 비밀 데이트 장소였는데.. 레예스는 당장 지난주의 순찰에서도 봤던 친구의 데이트 사정을 떠올렸다가 불미스러워져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렇게 나름의 통계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방에 다녀온 사람들을 만날 때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이 휑한 벽 너머에 무얼 그리 필요로 했을까.
"궁금하긴 한데.."
오직 궁금하다는 이유로 레예스는 자신에게도 그 방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의 간절한 소원이 생기길 원한다.
"안 열리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하지만 이조차도 충분히 간절하지는 않으니 방은 앞으로도 레예스에게 방문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방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필요한 걸 영영 못 구하는 건 아니니까. 아직 방을 열어본 적 없는 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일지라도 레예스는 확신했다. 레예스의 필요와 소원은 마법에 기대지 않아도 항상 이루어져 왔기에. 그러니 혹시 모른다. 간절함이 레예스의 소원이라면 언젠가 그럴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터이다. 레예스는 손을 들어 답이 없을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지어다."
그치만 너무 귀찮은 일이 생기진 않았으면 하는데.. 어디서 본 구절을 일말의 기대도 없이 장난스레 읊은 것도, 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또한 그냥 벽 앞에 서 있는 레예스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간절함에도 급을 나누려드는 배부른 생각은 레예스가 몇 번 걸음을 옮기는 잠깐 사이에 사라졌다. 간절함을 달라는 소원이 있던 그의 머릿속에는 이제 야간통행금지령이 떨어지고도 한참이 지난 이 시간까지 교정을 떠도는 학우들이 더는 없기를 바라는, 벽 너머를 알기엔 턱없이 작은 소원이 생겨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