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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뜩 들뜬 분위기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트라이위저드니 뭐니 안 그래도 이상하고 멍청한 애들로 가득한 학교에 다른 학교 아이들까지 들어오니 어찌나 어지러운지.. 그 넓던 연회장이 좁아 보이기까지 한다. 

    가뜩이나 못 자서 피곤한데 사방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에 머리가 욱신거린다. 머리를 꾹꾹 누르고있자, 옆에 앉은 그가 작은 주머니를 밀어준다. 얘 이름이 뭐였더라.. 같이하는 것도 많은데 아직도 이름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넌 어때?”
    “뭐가.”

    쟤. 그의 손끝을 따라 눈을 돌리면 밀을 가득 품은 색을 가진 곱슬거리는 머리가 보인다. 주변 사람들보다 툭 튀어나온 걸 보니 꽤 큰 키를 가진 모양이다. 연회장이 이렇게 밝았던가. 둥둥 떠 있는 양초의 불빛이 다른 곳은 흐리게 비추면서도, 그에게만은 고요하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듯한 웅성거림 속에서 오직 그의 모습만이 또렷했다. 

    “밝네.”
    “…뭔 소리야.”
    “그냥, 당분간 시끄러울 것 같다고.”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빽빽거리는 멍청이의 말을 무시하며 귀를 후볐다. 쟤 머리 한번 만져보고 싶다. 그런 잡생각을 하며 앞으로 밀려온 주머니를 챙겼다. 학교에 사람도 많아진 김에, 장사나 잘되면 좋겠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스쳤다.

-

    “하..”

    장사나 잘되면 좋겠다고? 망언도 이런 망언이 없다. 

    “몇 개라고?”
    “열..셋..아니, 열넷?”
    “미친, 그 정도면 내가 만들다가 취할걸.”

    몰래몰래 모아 온 재료로 마법 약을 만들어 팔아 만드는 건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재료 유통이나 판매는 놈이 하고 난 만들기만 하면 되니까. 제가 만들어 준 것을 먹고 멍청한 짓거리를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볼만했고..

    “적당히 받아왔어야지.”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그리고 가려 받은 거야.”

    가려 받았다는게 이거라고? 학교 내에 멍청한 인간들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어떻게 멍청하고 덜떨어진 것들은 용기도 없는지. 약을 먹여서 본인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겠다고? 이만큼 한심한 짓거리도 없다. 약에 취해서 사랑에 빠지면 그딴 게 사랑인가. 

    “사랑의 묘약이니 뭐니 한 번만 더 받아오면 만드는 대로 네 입에 다 처넣어버릴 거야.”
    “어어 그래. 그러니까 받아온 건 다 만들자?”

    이러다 호그와트가 사랑의 장인지 학교인지 구분이 안 갈 것 같다.

    “그래서 그 대상들이 누군데.”
    “레오나드.”
    “걔는 또 누구..하 그리고?”
    “레오나드.”
    “걔는 방금 말했잖아. 다른 애는?”
    “없어. 다 걔야.”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놈의 얼굴이 얄밉다. 저거..일부러 같은 대상으로 골라서 주문을 받아 온게 틀림없다.

    “미친새끼.”
    “할거지?”
    “며칠만 줘. 어떤 인간인지 알아야 만드니까.”

    어떤 인간인지 전생에 큰 죄를 지은 게 분명하다. 열네 개? 약을 그 정도로 한 번에 먹으면 약에 취하는 게 아니라 중독돼서 죽을 게 분명하다. 불쌍하기는.. 자, 그래서 어떤 인간인지 구경이나 해볼까?

    “쟤?”
    “고지식하고 딱딱한 덤스트랭 애들 반응이 궁금하지 않아?”

    아니,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런 건 이상한 취향을 가진 너나 재미있는 거겠지. 

    “재료 모자라면 말하고”
    “뭐? 간다고? 

    진짜 이렇게 가버린다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타버리는 것 같다. 옆자리가 비어 허망하게 바라보던 순간,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뭔데 또..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연회장에서 눈에 띄었던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햇빛을 받아 더 밝아 보이는 머리색. 구름이 떠다니는 듯한 하늘을 담은 푸른 눈동자. 쾌활하게 올라가는 입꼬리까지.

    “존재감이 엄청나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선을 끄는 게 참 시끄럽게도 살겠다 싶었다.  주변에 따라다니는 애들이 하나, 둘, 셋… 대충 세어보니 여섯 명쯤 되는 것 같다. 저 정도면 인기가 족쇄 아닌가. 나 같으면 귀찮아서 다 치워버렸을 거다. 그러고 보니 사랑의 묘약을 여러 개 먹어도 괜찮은가? 여러 명을 사랑하게 되는 건가? 그럼 열 네 명을 사랑하게 되려나.. 뭣도 모르고 당하기만 할 건데 조금 불쌍한가? 뭐,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 약효가 안 든다고 뭐라 하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이래서 내가 사랑의 묘약은 만들기 싫었던 건데.

    “…?”

    분명 시선이 닿았던 것 같았는데..착각인가? 누군가를 몰래 지켜보는 것은 피곤한 짓이다. 괜히 신경이 곤두서선 없는 일도 있는 일처럼 착각하게 되어버린다. 그나저나..언제까지 저렇게 둘러싸여 있는 거야? 말을 섞지 않아도 피곤하겠다. 난 보고 있기만 했는데도 부담스럽고 벗어나고 싶어진다. 여기서 더 보고 있다간 사람들 사이에 껴서 죽는 꿈을 꾸게 될 것 같다. 내일 다시 봐야지..

 

    요 며칠 지켜본 결과를 대충 요약해서 말해보자면.. 모범생도 저런 모범생이 없다. 교수들이 딱 좋아할 스타일? 보고 있으면 지루해서 몸이 뻐근해질 정도다. 그래도 꽤 잘난 얼굴과 좋은 몸을 가지고 있어서 중화된다고 해야 할까. 규칙적이고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뭘 하고 있을지 대충 찍어 맞추면 대부분 맞출 수 있는 정도인 것 같다. 
    교우관계는 매우 원만, 함께 지내는 친구들도 두루두루 많으며 친구들과 체스를 둔다든지, 대화를 나눈다든지.. 가끔 토론을 나누는 것 같기도 했는데 듣다가 머리가 터질뻔했다. 운동도 자주 하고 책도 많이 읽는다. 있을 법한 장소를 뒤져봐도 없을 때는 도서관에 있는 것 같더라. 마법 연습을 하는 걸 보는 건 조금 신기했다. 마법 주문을 뱉는 목소리가 꽤 좋기도 했고, 발음이 좋았다. 멀리서 들어도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마법 주문 몇 개를 외우는 덕도 봤다.

    “저걸 대체 왜 읽는 거지.”

    지금도 그는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더라.. 저 두꺼운 책을 반이나 읽으면서 몸 한번을 움직이지 않았다. 저런 곧은 자세로 말이다. 처음 도서관에 들어올 때 누군가에게 받아 들고 온 젤리는 손도 대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책에 집중해서인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저렇게 안 먹고 썩힐 거면 나 줬으면 좋겠다. 달라고 하면 줄까? 냅다 달라고 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그를 쫓아다니느라 들고 있던 간식을 죄다 먹어버려서 입이 심심해 미칠 지경이다. 

    “더 안 봐도 될 것 같은데.”

    관찰하는 것도 이쯤 할까. 간식도 떨어졌고 어떤 인간인지도 대충 알 것 같고.. 더 보고 있는 건 시간 낭비일 것 같다. 도서관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고 엉덩이고 뻐근하지 않은 곳이 없다. 책에 이렇게까지 둘러싸여 있는 건 답답하기도 하고.. 

    “이제 가볼…?”

    또다. 이번엔 착각이 아니다. 쟤..내가 일어나자마자 날 봤다. 그러고 보면 요 며칠 그를 따라다니는 동안 이랬던 적이 종종 있었다. 분명 관찰을 하고 있는 건 나인데 역으로 관찰당하는 기분이 들 때 말이다. 날 보고 있지도 않은데 내 움직임을 전부 읽고 있다고 느껴질 때랄까. 여태 그냥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아니었나 보다. 

    “…”

    복잡한 건 싫은데.. 저쪽에서도 모른 척하는 것 같은데 내가 말 걸지 않고 넘어가면 귀찮아질 일도 없지 않을까. 내가 따라다녔다는 증거도 없는데 굳이 꼬투리 잡으면서 따질 법한 성격도 아닌 것 같아보이고.. 좋아, 결정했다. 나도 그냥 모른 척 가버리자.

    “후… 괜히 긴장되네.”

아니, 근데 내가 못 할 짓한 것도 아니고 찔릴 게 뭐야? 물론 본인도 모르게 본인이 먹게 될 약을 내가 만들어서 팔 거지만 아직 만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찔릴 것도 없지. 당당하게 나가자. 도서관을 혼자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쓰고 나간 걸 수도 있지. 물론 책은 읽지 않았지만..굳이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들리는 건 아니기도 하니까.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 아니 왜 일어나?!”
    “..뭐?“

이런 미친, 실수했다. 얘는 왜 내가 지나가려 할 때 갑자기 일어나서 사람을 놀라게 해? 매번 거리를 두고 들었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니 소름이 돋는다.

    “그, 아니. 하..반이나 남았는데 왜 일어나?”
    “뭐가?”
    “책이..아직 다 안 읽었, 잖아?”
    “보고있었어?”

    와씨 , 큰일 났다. 얘 알면서 떠보는 거잖아. 그냥 일어나는 대로 뒀으면 됐는데 왜 괜히 말을 뱉어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입술은 바싹 마르고 목에 갈증이 일었다. 

    “...그거 먹을 거야?”
    “허..”
    “믿을 사람이 준 거 아니면 받아서 먹지 마. 여기 제정신 아닌 애들 많으니까.”

    젠장.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억지로 뱉어낸 목소리는 삐걱거리고 구차했다. 

    “아..미치겠네..”

    도망치자. 도망친 후에 만날 일 없게 피해 다니면 된다. 얘도 거슬리는 애 없어지면 편하고 좋겠지. 한동안 구경 잘했고, 앞으로는 보지 말자. 그를 지나쳐 빠르게 달려가는 동안 뒤에서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이젠 진짜 일을 해야 하니까.

-

    “아, 미안”
    “하…”

    분명 다시 보지 않겠다고, 보게 되더라도 피해 다닐 거라고 다짐했었거늘..이렇게 최악의 형태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체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 거지? 보통 이 시간쯤엔 운동을 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것보다..

    “아.. 오늘 마실 것도 없는데.”

    죄다 깨져버렸다. 며칠 제대로 자지 않아서 몸 상태가 영 좋지 못했던 게 패착이었다.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닌데 꼴사납게 넘어지며 들고 있던 약이 든 유리병이 죄다 깨져버릴 줄 몰랐다. 지금 얼마어치를 날린 거야? 들어간 재료만 떠올렸는데 머리가 아파져 온다. 차라리 재료가 떨어진 거면 주워서 다시 쓰기라도 하지..쭈그려 앉아 허망하게 버려진 약들을 보고 있자니 우울해진다. 당장 입에 단 거라도 집어넣어야 이 기분 나쁨이 풀릴 것 같다. 

    “단 거 있어?”
    “뭐..?”
    “넌 왜 덩치도 큰 게 기척도 없이 다녀서는..아니, 아니다 미안..”

    괜히 화풀이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수면을 위한 마법 약도 만들었겠다 이거나 먹고 하루 정도는 푹 자고 난 후 주문 들어온 것들이나 쳐내려고 했는데 이게 다 깨져버린 바람에 또 며칠은 밤을 새우게 생겼다. 

    “이거면 돼?”
    “어..”

    얘 뭐야?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나? 기분 나빠서 가는 게 정상 아니야..? 왜 사탕을 주고 있는 거지. 달라면 다 주는 호구 기질도 있는건가? 아닌데.. 웃으면서 쳐낼 건 다 쳐내는 것 같던데.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 주니까 받아야지. 그나저나 수면 약도 없고 간식도 없는데 당분간 어떻게 지내야하나..

    “믿을 사람이 준 거 아니면 먹지 말라더니.”

    입안에 넣은 사탕이 이와 부딪히며 도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혀끝에 번진 진한 단맛이 잔뜩 곤두서있던 긴장을 풀었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숨결이 부드러워지자, 그의 말을 곱씹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사탕을 주길래 받아서 그대로 입에 집어넣었다고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는데.. 본인 상황을 모르니까 저런 말이나 할 수 있는 거겠지.

    “네가 이상한 짓할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단 게 들어가니까 조금 낫다. 뭐..평소에는 얼마나 잘 잤다고 고작 이거에 예민해졌었는지.. 제 말에 입을 달싹이던 그가 눈을 돌려 깨진 유리병을 바라본다. 액체는 진득하게 바닥에 붙어 흐르고, 파편으로 사방팔방 떨어진 것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쓰렸다.

    “당장 구할 곳이 있으려나..”
    “이게 뭔데?”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게 해주는 약.”
    “병동에 가면 주지 않나?”
    “난 안 줘.”

    병동에 가서 받아올 수 있었으면 진즉 받아왔지. 재료를 구해와서 직접 만들어 먹는 피곤한 짓을 왜 하고 있겠어. 너무 자주 가서 약을 받아온 게 문제였지, 약물남용이라나 뭐라나..하여튼 이제 제가 수면 관련된 약만 달라고 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니 병동 근처는 가는 것도 눈치 보인다.

    “..내가 가져다줄게.”
    “왜?”
    “이렇게 된 건 내 탓도 있는 것 같으니까.”

    내가 본인을 따라다녔다는 걸 잊은 걸까. 아니면 오지랖이 넓은 걸까. 아니면 정말 호구 기질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가져다주면..나도 선물 하나 줄게.”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줘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비록 돈에 눈이 멀었다지만 그런 기본적인 예의는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니까. 선물? 하고 반문하는 말이 들렸으나 입을 꾹 닫고 웃어 보였다. 주문 들어온 것 외에 만들 것이 또 생겼네.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난 치우고 갈 테니까 먼저 가. 약은 잘 부탁하고.”

 

    그는 본인이 한 말을 지켰다. 그날은 간만에 단잠에 빠져 피로를 풀 수 있었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난 덕에 멀쩡해진 몸으로 그에게 먹일 약을 만들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그래도 어쩌겠는가. 주문이 들어왔으면 만들어서 팔아야지. 씻고 올걸 그랬나? 온몸을 덮은 냄새나 손끝에서 진동하는 풀 내음이 거슬린다. 이것만 주고 나면 바로 씻으러 가야겠다. 

    “안 오는 줄 알았어.”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대충 적어 넣어둔 쪽지를 손에 들고 온 얼굴이 꽤 예민해 보인다. 

 

    “원래..이렇게 수상한 쪽지를 따라오진 않지.”
    “그래..?”

    수상하게 적지는 않았는데.. 나름 본명도 잘 적어놨고 여기까지 오는 길도 상세하게 설명해 놓놨다. 대체 어디가 수상하다는 거지?

    “안 오면 찾아가려 했는데 와줘서 고생을 덜었네.”
    “수상하게 오라고 하는 것보다 네가 오는 게 더..”
    “네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피곤해지긴 싫어서.”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한다.

    “자. 이거 주려고 오라 했어.”

 주머니에 고이 모셔놓았던 해독약을 꺼내 건네주자, 의심이 가득한 눈이 제게 닿는다.

    “이게 뭔데?”
    “해독약.”
    “해독약?”

    거 되게 경계하네. 평소에 다른 애들이 주는 간식이나 경계하지 왜 이걸 경계하는 거야?

    “은혜 갚는다고 했잖아.”
    “이게 은혜라고?”

    와..얘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지? 다른 애들이 주는 건 웃으면서 넘기더니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팔 아픈데 받지..?”
    “이걸 왜 주는데”
    “필요할 일이 생길 거니까.”
    “이게 왜 내게 필요할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해.”

    몰랐는데 되게 경계심이 많고 꼬치꼬치 따져 묻는 성격이었나보다. 사람의 성의를 제때 안 받고 저렇게 구는 걸 보니 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 같다.

    “받기 싫으면 말아.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모르는 거야.”

    나도 이제 모르겠다. 해독약은 아무나 잡아 팔아버리면 되겠지. 나중에 사랑의 묘약으로 해롱거리면서 병동으로 끌려가서 나중에 수치스러워해도 난 모르는 거라고. 

    “내가 후회할 만한 일이..”
    “떨어질 뻔했잖아!!”

    식겁했다. 손에 힘을 조금이라도 덜 줬다면 저번처럼 땅에 떨어져 깨질 뻔했다. 앞으로 얘가 보이면 지팡이라도 들고 있어야 하나. 제 소리에 크게 뜬 눈이 저를 바라본다. 팔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걸 보고 있자니 턱끝까지 차올랐던 욕이 내려앉는다.

    “다른 애들이 주는 건 덥석덥석 잘 받으면서 왜 이제 와서 깐깐하게 굴어?”
    “덥석덥석… 믿을 사람이 준 게 아니면 받아서 먹지 말라고 한 건 네가 아닌가?”
    “그렇게 안 생겨서 뒤끝이 길구나?”

    ‘뒤끝..’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왜 자꾸 내 말을 따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해독약을 안 받을 거면 볼 일 없는데 이대로 나가버릴까. 굳이 얘랑 이 밀폐된 공간에서 끝나지 않을 말다툼을 하고 있어야 하나?

    “됐어. 약 안 받을 거면 갈래.”

    혹 떨어트릴까 봐 주머니에 유리병을 고이 집어넣고 발을 옮기자 성큼 다가온 그가 제 앞을 가로막는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수상하게 군 건 네가 먼저잖아.”

    덩치도 큰게, 민다고 밀릴 것 같지도 않고..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때린다고 해서 타격이 들어갈 것 같지도 않다. 괜히 여기로 오라고 했다. 해독약을 안 받을 줄 알았다면 그냥 사람이 많은 곳도 상관없었을 거다. 이대로 나가기도 힘들어졌고 듣고 싶은 걸 다 들을 때까지 비켜줄 것 같지도 않은데 어쩐담.. 그냥 마법으로 묶어놓고 나갈까?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팡이를 꽉 쥐자, 공기가 날카로워진다. 

    “하.. 그냥 조금 관찰한 거였어.”

    순간 욱하기는 했지만, 싸울만한 일도 아니니까 일을 키울 필요는 없겠지. 안주머니 속 지팡이를 꺼내 손가락에 끼우고 빙빙 돌리며 말을 꺼냈다. 혹시 모르니까 들고 있긴 해야지. 버려진 책상에 걸터앉아 그를 바라보자, 문을 막고 저를 바라보던 딱딱한 몸이 살짝 풀린 것이 보였다.

    “사랑의 묘약이라고 알아?”

    눈썹이 까딱 움직인다. 이젠 대꾸도 안 하는 거 봐. 평소에 보이던 웃는 얼굴은 가면인 건가?

    “그걸 먹이려는 애들이 꽤 많아. 아마..오늘내일부터 많아질 것 같은데.. 뭐..그거 해독하라고 주는 거였는데 안 받으신다니까 말아야지.”
    “넌 그걸 어떻게 알아.”
    “사생활이야.”

    굳이 내가 약을 만들어서 판다는 말은 안 해도 되겠지. 해서 좋을 것도 없고..

    “그러니까 나만 경계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경계하라고. 사람 좋은 척 웃으면서 대하기만 하다가 호구 잡혀 너.”
    “내가 그렇게 보였나 보네.”
    “…꽤?”

    푸핫, 하고 시원한 웃음이 터진다. 뭐..뭔데,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어? 대체 왜 웃는 거야. 웃긴 말도 아니었잖아.

    “그걸 왜 알려줘?”
    “알려줄 때까지 안 비켜줄 거였잖아! 들을 거 다 들었으면 비켜. 나 나갈 거야.”
    “해독약은..”
    “아!! 그래 너 주려고 만든 거니까 가져가라 가져가!”

    그렇게 안 봤는데 받을 것도 다 받아 가고, 능글거리는 게 보통이 아니다. 평소에 웃는 얼굴은 진짜 가면이었나 봐. 어쩐지 초반과 달리 가면 갈수록 북적거리던 사람들이 없어지더라니. 그냥 웃는 얼굴로 다 쳐낸 거였나 보다. 

    “달라고 말하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럼 내놔.”
    “잘 받을게.”

    웃으며 해독약을 챙겨 넣는 것도 얄밉다.

    “너..진짜 성격 나쁘네.”
    “처음 듣는 말인데.”
    “다들 멍청한가 보지. 비켜, 나 갈 거라니까?”

    몸을 틀어 한걸음 이동하자 가려져 있던 문이 보였다. 문에 한 걸음 다가가자, 저보다 먼저 문고리를 잡은 큰 손이 보였다.

    “레일라, 무도회 파트너는 있어?”
    “나..나는 그런 거 참가 안해.”
    “없다는 거네.”

    얘 미쳤나 봐. 어둡고 쿰쿰한 먼지 냄새가 가득한 교실에 있었다고 정신까지 어두워지는가보다. 

    “인카서러스.”

    허공에서 튀어나온 밧줄이 그의 몸을 묶었다. 놀라움을 담은 눈이 저를 바라보는 게 왜인지 묶인 상황에서도 여유로워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게, 간다고 할 때 그냥 보내주지.”

    밧줄에 묶인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입술을 붙이는 그 모든 행동은 엉망으로 뒤섞인 머리와 감정이 쏟아낸 충동 그 자체였다. 말하는 꼴을 보니 파트너를 하자 제안할 것 같지만, 딱히 날 좋아하는 기색은커녕 관심조차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진심 없는 가벼운 태도가 거슬렸다. 난 누구에게 당해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먼저 가볍게 접근하려 했으니 나 역시 반격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 게..뭐..”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라 했었는데.. 충동이 저지른 첫 입맞춤은 제가 들었던 것과는 꽤 많이 다른 것이었다. 부드럽고 달콤하지도, 무언가 둥둥 떠다니는 것도 아닌 충동적이고 놀라우며 충격으로 가득한 무언가.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보려는 것 같길래.”

    귓바퀴가 화끈거리는 것 같은 건 착각일 거다. 얼빠진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얼굴이 조금은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묶여있는 그를 보며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어느 방해도 없이 수월하게 열린 문을 고이 닫은 후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사람이 많아진 탓에 북적거리는 복도를 지나면서 술렁이는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어쩌면 남은 시간이 평범하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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