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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애건 앨리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카페 ‘초이스’는 디안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커다란 상점들이 있는 중심 상권에 있지는 않았지만, 단골들의 걸음이 잦은 곳이었다. 구석구석 품을 들여 꾸민 카페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장식장이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유리 장식장 안에는 형형색색의 찻잔이 가득했다.

    가끔 부모님이 머글 세계를 여행한 뒤 돌아오면 하나씩 채워지던 장식장은 이제 잔을 더 들여놓을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건 리스본에서, 저건 베를린에서, 또 어떤 건 파리에서. 뽀얀 찻잔을 손에 든 손님들에게 늘어놓는 여행기는 끊일 줄 몰랐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가장 아끼는 건 장식장 중앙의 넓은 칸 하나를 혼자 독차지하고 앉은 투명한 녹색의 찻잔이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보석 세공 장인이 에메랄드 원석을 세공해 만든 작품이라던가? 고작해야 에스프레소 샷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기인데 장식장 안의 모든 잔을 합친 가격보다도 비싸다고 했다. 결혼 15주년을 맞이한 아빠의 선물이었다. 귀한 손님이 올 때면 접객을 나가던 다른 칸의 찻잔들과 달리, 에메랄드로 만든 잔만은 그 자리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다.

    투박한 곳 하나 없이 매끈하게 떨어지는 작은 반원은 햇빛을 만나면 무지개빛으로 찬연히 빛났다. 디안은 만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 잔을 자주 들여다보고는 했다. 그늘 속에서 차갑게 가라앉았다가도 빛이 비치면 따뜻한 빛으로 반짝이는 표면을.

​​

    “무슨 생각해?”

    “…….”

    “…….”

​​

    기울어지는 고개를 따라 머리를 기울이며 디안은 목을 울리며 웃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서쪽 탑 꼭대기에는 부엉이와 올빼미들이 모여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선물을 배달하느라 고단한 기색이었다. 지안이 제 곁에 앉은 올빼미의 정수리를 간질이자 기지개하듯 커다란 날개를 펼친 녀석이 방 내부를 한 바퀴 휙 돌아 날고는 근처 횃대로 올라섰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생각.”

    “아….”

    지안이 민망한 듯 눈 밑을 긁적였다.

    “아주 까칠하기 짝이 없었지, 우리 지안이.

    “…….”

    “눈을 이렇게, 뜨고는 그랬잖아.”

    “…….”

    “시끄러우니까, 꺼져.”

    손가락을 눈 끝에 대고 쭉 밀어 올리면서 퉁명스러운 말투를 흉내 내자 지안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울대를 울리며 어깨를 들썩이던 지안은 양쪽 눈 밑을 훔쳐냈다.

    미안. 그때 너, 정말 이상한 애 같았으니까. 솔직한 말에 디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레이트홀 넓은 테이블에 외딴섬처럼 앉아 있던 지안과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디안은 에메랄드로 만든 찻잔을 떠올렸다.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그것’을

    어스름한 홀 내부로 떨어지는 은은한 빛줄기. 암적색의 포도 알갱이를 움켜쥐는 하얀 손. 그 끝은 과즙에 물들기라도 한 듯 붉었다. 파란색 머플러를 몇 번 추어올리며 그 안으로 보랏빛이 도는 작은 머리를 숨기던 지안이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을 때, 디안은 심해를 마주한 민물고기처럼 입만 간신히 뻐끔거렸다. 벌린 입안으로 호흡이 자꾸만 먹혀들었다. 숨이 가빠 얼굴이 빨개질 때쯤 튀어나온 말 또한 엉망진창이었다.

​​

    ‘아, 아, 안녕! 너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예쁘다…….’

    홀 내부를 비추는 작은 빛을 흡수하며 다양한 색으로 빛나던 초록색 눈동자에 냉기가 서리는 것은 순간이었다. 보고 있던 책을 소리 나게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지안은 쿨럭대며 홀을 떠났다. 디안은 휘날리는 로브 끝자락을 바라보며 떠난 이를 복기했다. 온 세상의 빛을 품고 있던 녹색 눈동자를.

    “이상한 애라니 너무해.”

    “그렇잖아. 어디를 가도 시야에 네가 걸렸다고.”

    “그야……. 널 따라다녔으니까.”

    “…심지어 그다음 학기에는 같은 수업까지 듣고.”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 수업 NEWT 과정이었잖아. 지안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도 슬쩍 좁아져 있었다. 수업을 들은 건 아니었고, 지안이 좋아하는 제일 뒤쪽 구석 자리에 몰래 앉아 있었을 뿐이었지만. 존재감을 숨기는 포션까지 먹었다는 사실은 굳이 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디안은 시침을 떼며 싱긋 웃었다. 몇 번 얼굴을 비췄다고 같은 수업을 들었다고 착각하는 지안이 귀여웠다.

    “혹시 알아? 내가 몇백 년에 한 번씩 나오는 위대한 마법사일 수도 있잖아.”

    “말이 되냐? OWL도 간신히 통과했으면서.”

    “…흥!”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지안의 관점에서 그건 스토킹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지안을 찾으려 호그와트 온 성을 뒤집고 다녔다. 홀에서 만난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이에 대해 디안이 아는 거라고는 래번클로 기숙사라는 것뿐이었다.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굳게 닫힌 기숙사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문을 지키는 독수리상에게 수없이 쫓겨났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같은 이상한 질문을 하는 괴상한 독수리상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가 정수리를 쪼이기도 했다.

    며칠 만에 지안을 다시 만났을 때는 반가운 마음에 거의 소리를 지르 다시피 인사를 건넸다. 애석하게도 인사 직후 지안과 디안은 나란히 쫓겨났다. 디안이 우렁찬 인사를 건넨 곳이 도서관이었기 때문에.

    ‘안녕! 난, 디안이야!’

    ‘…….’

    ‘넌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몇 학년이야? 4학년? 5학년?’

    ‘…야.’

    ‘응!’

    ‘시끄러우니까, 꺼져. 너 때문에 도서관에서 쫓겨났잖아.’

    지안은 여전히 쿨럭거리고 있었다. 며칠 전보다 기침 소리가 더 심각 해 보였다. 겨울 한복판이었지만 오래간만에 해가 뜬 맑은 날씨라 꽤 포근한데도 지안은 자꾸만 로브를 움켜쥐며 몸을 감쌌다.

    ‘…넌, 크리스마스인데 집에 안 돌아가?’

    ‘…….’

    ‘나는 부모님이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셔서……. 올해도 학교에 남게 됐네.’

    ‘…….’

    ‘넌 집이 어디야? 우리 집은 웨일스에 있는데. 아, 그래서 이름은?’

    ‘…하.’

    지안은 끈덕지게 따라붙는 빨간 눈동자를 모르는 체하고는 앞서 걸었다. 키도 반 뼘은 더 큰 녀석이 작정하고 빨리 걸으니 쫓아가는 것이 영 버거웠다. 거의 뛰다시피 따라붙었지만,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디안이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을 때, 지안은 로브 자락을 흩날리며 래번클로 탑을 향해 사라졌다.

​​

    본인이 알려주지 않으니 이름을 확인하는 것도 어려웠다. 얼굴만 겨우 아는 래번클로의 학생들에게 매달리다시피 해서 얻어낸 이름. 그 외의 정보는 모두 불투명했다. 그나마도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니었으면 이름을 알기도 어려웠을 터였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 같은 기숙사 내에서도 지안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당시 이미 지안은 5학년이었는데도. ‘지안’이란 이름도 간신히 떠올린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을 지나치며 디안은 생각했다.

    지안도 꽤 외로운 학교생활을 해왔겠다고.

    덤스트랭 출신 아버지와 후플푸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디안은 그리핀도르에 배정받았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애초 모자의 의중을 누가 알 수 있겠어?

    알음알음 얼굴을 아는 아이들끼리 살가운 인사를 나누는 동안 디안은 외딴섬처럼 앉아 홀의 천장을 떠다니는 샹들리에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심코 기숙사 배정이 잘못된 거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별수는 없었다. 편지로 전한 그리핀도르 배정 소식에 엄마는 의아해하면서도 잘 지내기를 응원했다.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은 더러 있었지만, 디안은 어울리는 무리 없이 홀로 다니길 택했다. 엄마의 바람에는 못 미치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외로울 때도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동아리라든지, 퀴디치 같은 것도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남으면 기숙사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쓰거나,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학교가 싫다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디안은 다만 남들과는 다르게 학교생활을 즐길 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지루해 보이긴 해도.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같이 도서관에 처박혀 있다든지, 모두 퀴디치 경기에 한눈판 사이 조용해진 성 안을 산책할 수도 있었을 텐데. 디안은 작지만 포근한 기숙사 침대에 누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친해지고 싶었던 건, 단연코 지안뿐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성 안은 조용했다. 디안은 가벼운 차림으로 눈 덮인 성 안을 돌아다녔다. 크림색 니트 위로 두른 그리핀도르의 기다란 머플러만 바람을 맞아 펄럭일 뿐이었다.

    북유럽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온 아빠를 닮았는지 디안은 추위를 타지않았다. 물론 춥기는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들렀던 아빠의 고향, 노르웨이의 추위는 30초 만에 몸 안의 모든 수분을 얼려버릴 것 같았으니까. 영국의 추위 정도야 우스운 것이었다.

    디안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도서관을 향했다. 얼기설기 얽힌 계단을 밟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기분이 좋았다. 혼자 남은 기숙사 방이나,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 교정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디안은 품에 안은 책을 추어올렸다. 기숙사에서부터 들고나온 책을 반납하고 또 다른 책들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어?’

    3층 입구에 쓰러지듯 앉아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손에 지팡이를 쥐고는 계단 손잡이를 붙잡고 웅크려 앉아 있는 것은, 놀랍게도 지안이었다.

    어머, 어떡하지? 얘! 얼른 폼프리를 불러! 엄청나게 기침하더니, 독감인 게 분명한 것 같구나, 얘야. 주변의 액자 안에 앉은 여인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 댔다. 계단이 움직이기 전 재빨리 걸음을 돌린 디안은 지안을 끌어안았다. 커다란 몸이 힘없이 안겨 왔다.

    ‘지안! 괜찮아?!’

    ‘어지러워…….’

    ‘여, 열이…!’

     몸을 기대오는 지안에게서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

    “안 추워?”

    “응?”

    “또 폐렴 걸리면 어떡해.”

    장난기가 가득한 디안의 말투에 지안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곤 이내 깨달은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에 잡아먹힌 녹색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지만 디안은 이제 알았다. 저 눈 안에 담긴 다정함을.

    “안 걸렸었거든.”

    “그래, 맞아. 미련하게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폐렴으로 발전하기 직전에야 병동 앞에서 쓰러졌었지.”

    “…….”

    “폼프리 부인이 정신 잃은 너 대신 나한테 한참을 뭐라고 했다고.”

    넌 나만 보이면 도망가기에 바빴는데. 내가 대체 어떻게 네가 그렇게 아픈 줄 알겠어? 퉁명스러운 말투에 지안은 무릎 위에 모은 손을 곰실거리다가 손을 마주 잡아 왔다. 손바닥 안을 문지르는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손 차갑다.”

    “아, 미안.”

    “아니, 그게 아니고.”

    멀어지는 손을 잡아끌었다. 그 힘에 지안의 상체가 훅 끌려왔다. 횃대에 앉아 있던 부엉이 몇 마리가 놀라 파드득 날아올랐다. 걸터앉았던 창틀에서 어정쩡하게 일어선 지안은 놀란 얼굴을 하다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먼지가 묻은 옷을 툭툭 털어내고, 지안은 디안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정말 괜찮아? 그만 내려갈까?”

    차가운 손을 주무르며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 그 붉은 점 두 개를 바라보며 지안은 고개를 저었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될 거야. 그것만 보고 돌아가자. 지안은 마주 잡은 디안의 손등을 입술에 붙였다 뗐다. 부서지는 웃음소리가 하얀 입김과 함께 흩어졌다.

    멀리서 연회장의 소음이 들려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음악 소리, 부 엉이와 올빼미의 울음소리, 바람이 지나는 소리. 마주 잡은 손이 비벼지는 소리. 그 미묘한 앙상블을 들으며 디안은 지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눈꺼풀 아래로 붉은 눈동자가 스르르 먹혀들었다.

    지안은 병동에 누운 지 만 하루 만에야 정신을 차렸다. 수프 조금과 약을 먹은 뒤 다시 잠에 든 지안은 그날 저녁이 돼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디안은 그 옆에 앉아 일기를 쓰고 또 책을 읽으며 간헐적으로 끙끙거리는 지안의 곁을 지켰다. 마른 입술 위에 덮어두었던 천을 다시 적셔 올려두려던 때, 지안이 눈을 떴다.

    침대를 밝히는 촛불이 비쳐 희미한 빛을 머금은 녹색 눈동자. 작은 촛불 빛에 의지해 흐릿한 시야를 되찾듯 눈을 깜빡거리던 지안은 침대 위에 놓인 디안의 손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지안이야.’

    ‘……뭐?’

    ‘내 이름. 이미 알고 있겠지만.’

    ‘…….’

    ‘켄싱턴에서 왔고. 쿨럭, 5학년.’

    ‘아…….’

    ‘크리스마스쯤에는, 고모님이 바쁘셔서 집이, 항상 비어 있으니까. 돌아가지 않은 것, 뿐이야.’

    지안은 기침을 참는 듯 숨을 들이켰다 천천히 뱉으며 말했다. 그 탓에 말은 중간중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어졌다. 통증이 느껴지는지 명치 위를 꾹 누르기도 했다. 디안은 커다란 손 아래 갇힌 제 손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귓가가 뜨거웠다. 못내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며칠 전 제 질문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그걸 지금 떠올려 답을 해준다는 것도.

    ‘으응….’

    ‘그리고, 고마워.’

    말을 마친 지안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지안이 뒤척이며 얹어뒀던 손이 떨어질 때가 돼서야 디안은 굳은 듯 앉아있던 몸을 펴고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펑--! 멀리 성 위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디안은 파드득 몸을 일으키고는 지안을 테라스로 이끌었다. 중원으로부터 다시 한번 여러 뭉치의 불꽃이 쏘아져 올라갔다. 검은 하늘 위에 수놓아지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은 다양한 모양의 잔상을 남기고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빗자루에 올라탄 인영 몇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한데 모인 불꽃이 용의 모양을 한 채로 성을 향해 쏟아져 내리다 흩어졌다. 용맹한 모습을 한 마법사 무리가 어둠의 적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과 승리를 기뻐하는 요정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렇게 함께 보내는 겨울도, 마지막이네.”

    “…….”

    “아쉬워.”

    지안은 대답 없이 잠깐 놓았던 손을 다시 붙잡았다. 디안의 투명한 눈동자 표면에 하늘의 풍경이 옮겨붙어 온갖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안은 한참 동안 그 안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서늘한 바람 한 자락이 둘 사이를 고요히 지났다.

    “우리가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즐거웠겠지.”

    “맞아. 즐거웠을 거야.”

    같은 기숙사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디안이 하하,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지안은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줄 뿐이었다.

    “너 없이 남은 1년을 어떻게 버티지.”

    “나 아직 졸업 안 했는데?”

    “…….”

    “노려보지 마.”

    “…멍청이.”

    지안은 머글 세계로 나가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마법사였던 부모님의 유지를 받아 호그와트에 입학했을 뿐, 마법사의 길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졸업한 뒤에는 고모님의 사업을 물려받게 된다고 했다. 응원한다는 말을 전했지만 디안은 자못 서운했다. 머글 세계에서 사업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곧 지안과 디안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디안은 처음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끝났다.”

    쉴 새 없이 울리던 불꽃의 소리가 멎고 이내 모든 불빛이 사그라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음악 소리는 너무 작아서 두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불꽃놀이 소리에 잠에서 깬 부엉이와 올빼미가 내는 울음소리만 주변에 가득했다.

    지안과 디안은 손을 맞잡고 탑을 내려갔다. 나선형의 계단을 밟는 두 개의 발소리가 엇갈리며 주변을 울렸다. 좁은 계단을 앞서 걸으면서 디안은 착잡한 마음을 눌렀다.

    지안이 먼저 우리 가게로 놀러 올 수도 있지. 아니면 내가 지안을 찾아가도 괜찮고. 카페를 조금 일찍 닫으면 지안과 만날 시간도 있을지 몰라. 불확실한 미래를 가정하며 터덜터덜 걷던 디안의 팔이 문득 뒤로 당겨졌다. 뒤따라오던 지안이 멈춰선 탓이었다.

    “디안.”

    “응?”

    창을 등지고 선 탓에 몇 계단 위에 선 지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지금 희미하게 미소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놓은 지안은 디안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듯.

    디안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다가, 지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문득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코 끝에 울음이 몽글몽글 뭉쳐 들었다.

    “…지안아.”

    “응.”

    “우리 엄마 카페에, 커다란 장식장이 있거든?”

    “응?”

    

    갑작스러운 말에 지안의 목소리에 의문이 차올랐다.

     “내 키에 몇 배는 되는 커다란 장식장인데…. 거기에 찻잔이 한가득 있거든.”

    “응.”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잔이 있어.”

    “…….”

    “에메랄드 원석을 깎아 만든 잔인데. 사실 잔이라고 하기도 애매해. 엄청 작아서.”

    내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아. 디안이 지안의 등 뒤로 엄지를 펴며 짧게 덧붙였다.

    “그래? 근데 그게 왜 제일 좋은데?”

    “네 눈을 닮았거든.”

    

    가볍게 등을 토닥이던 지안의 손이 툭 멎었다. 디안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투명한 녹색이, 햇빛에 닿으면 따뜻하게 빛나는데…. 그게 네 눈을 닮았어.”

    “…….”

    “그러니까….”

    디안은 고개를 들어 지안을 올려다봤다. 지안 역시 디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보러 와.”

    “…….”

    “기다리고 있을게.”

    지안의 품에 이마를 기대며 디안은 끝내 젖어든 말끝을 숨겼다. 지안의 대답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커다란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굵은 눈송이가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흩날리고 있었다. 빗자루가 쉴 틈 없이 눈을 쓸고 있었지만 쓸어내는 속도 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디안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빗자루를 안으로 들였다.

    폭설에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카페 안도 손님 없이 조용할 뿐이었다. 디안은 따뜻하게 데운 찻잔에 차를 따랐다. 거기에 설탕을 반 스푼 넣어 섞고, 스트레이트 잔에 럼을 절반 정도 채웠다. 진한 홍차 위로 잔을 기울이니 향긋한 향이 피어올랐다.

    졸업 후 가게를 물려받은 지도 벌써 몇 년. 카페 ‘초이스’는 여전히 다이애건 앨리의 한쪽 구석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차의 맛도 그대로, 자주 찾던 단골들도 그대로, 가게 한편에 자리한 장식장도 그대로였다. 카페를 물려준 엄마는 드디어 아들 키운 덕을 좀 보겠다며 아빠와 함께 세계를 여행 중이었다. 간혹 맛있는 차를 발견했다며 편지와 함께 안부를 전해오고는 했다.

    디안은 대체로 만족하며 살았지만, 간혹 권태로움을 느꼈다. 그럴 때면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는 했다. 보낼 수 있었지만, 보내지 않은 편지들이 카페 한편에 쌓여갔다.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던 디안은 습관처럼 다시 편지지를 펼쳤다. 깃펜에 잉크를 적셔 익숙한 이름을 먼저 적어 넣었다. 막상 펜을 들었으나 쓰고 싶은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펜 끝에 머물던 잉크 한 방울이 툭, 종이 위로 낙하했다. 종이의 결을 타고 번져나가는 잉크를 바라보다 디안은 한 문장을 적었다.

    벌써 몇 장이나 되는 편지에 적었던, 간결한 진심. 디안은 종이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한쪽 귀퉁이에 커다란 점이 찍힌 종이를 반으로, 그리고 한 번 더 반으로 접은 뒤, 편지를 쌓아둔 곳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다 마신 찻잔을 헹구어 걸어두고, 디안은 마른 걸레를 들고 장식장으로 향했다. 다른 곳은 모두 마법으로 청소했지만 장식장만은 늘 직접 관리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엄마를 보며 배운 습관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제일 위쪽에 있는 찻잔부터 먼지를 털어내듯 닦았다. 사람이 매일 들고나는 곳이라 매일 닦아내도 먼지가 쌓였다. 만들만들한 컵 표면을 가볍게 훑어내고 컵받침도 한 번 닦았다. 손잡이를 돌려 방향을 맞춰 다시 잔에 넣어두기를 수십 번 반복하면 됐다.

    디안은 의식적으로 정중앙에 있는 작은 잔을 외면했다. 마지막에는 결국 손을 대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바깥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렸다. 후우웅, 하는 소리가 창을 두드리고 흩날리던 눈송이가 바람에 날려 대각으로 떨어졌다. 날이 흐린 탓에 햇빛이 들지는 않았지만 쌓인 눈 때문에 밖이 밝았다. 디안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출입구에 달아둔 종이 딸랑, 소리를 냈다. 바람 때문인가? 디안 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안녕.”

    코트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내며 남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보랏빛이 도는 머리 위로 쌓인 눈이 점점 녹으며 머리칼이 젖어 들고 있었다. 디안은 사다리 위에 서서 멍하니 남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오래 기다렸지?”

    “…….”

    남자는 손가락으로 젖은 머리를 살살 털어내며 디안의 앞으로 걸어왔다. 어두운 실내를 천천히 걸어오는 발걸음마다 젖은 발자국이 남았다. 카페 한편으로 난 큰 창 앞에 서자 쌓인 눈에 반사된 빛이 남자의 눈동자를 비췄다. 선명한 에메랄드빛. 바다의 심장 같기도 하고, 숲이 흘리는 눈물 같기도 한 깊은 색 눈동자.

    “지안….”

    

    서쪽 탑의 계단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눈동자가 이제는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

    디안은 그날의 지안처럼 양 팔을 벌렸다. 지안 역시 그날의 디안처럼 허리를 단단하게 안아왔다. 디안은 촉촉하게 젖은 머리칼에 입술을 묻으며,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에 적었던 진심을 내뱉었다.

    “보고 싶었어.”

    오래전 그날의 대답이 이제는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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