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이 있는지 묻는 말에 유월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수많은 기억 속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기억. 그리핀도르! 라고 외치던 마법모자의 목소리도, 첫 퀴디치 경기에 나간 순간도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리키 콜드런 여관을 지나 다이애건 앨리에 발을 들이던 그날. 그것이 유월에게 있어 가장 빛나는 기억이었다.
처음 다이애건 앨리에 방문할 땐 호그와트 소속 교수의 안내를 받았다. 머글 집안의 마법사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월은 그날 이후, 리키 콜드런의 벽돌 두드리는 순서를 몇 번이고 외웠다. 마침내 혼자서도 다이애건 앨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유월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그저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었다. 아주 추운 날, 문 앞에 버려진 아이를 양손녀로 들여 키워준 감사한 존재였다. 그 아이가 열한 살이 되던 해, 마법사 사회를 알게 된 후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여준 가족이었다. 때론 엄격했으나 덕분에 유월은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늘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녀가 되려 노력했고, 그분의 기대를 실망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2학년이 되던 해, 유월은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세계를 보여드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지팡이로 알맞은 벽돌을 두드리자, 벽돌이 흔들리며 통로를 만들어냈다. 작게 감탄을 내뱉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유월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린고츠 은행에서 머글 돈을 갈레온으로 잔뜩 교환한 후, 거리를 거닐며 필요한 교재와 마법용품을 구매했다. 서점에서 같은 기숙사 친구들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잡고 있던 손이 사라졌음을 안 유월이 급하게 밖으로 나가자, 여유롭게 웃으며 서점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어디에 다녀오셨습니까?”
유월의 말에 할아버지는 그저 웃으며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
대연회장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유월은, 다른 친구들이 천장에서 날아든 올빼미로부터 소포를 받는 것을 보며 잠시 부러움이 스민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애써 시선을 돌리던 바로 그때, 갈색 올빼미 한 마리가 유월의 머리 위로 날아와 거대한 소포를 내려놓았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친구들이 어서 풀어보라며 흥분하자, 유월은 급히 포장을 풀었다. 두꺼운 포장지를 벗겨내자, 새것처럼 빛나는 빗자루가 모습을 보였다. 현재 시중에 나온 것 중 가장 비싼 것이었다.
누가 보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유월은 눈물이 도는 것을 억누르며 애써 벅차오르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날 밤, 유월은 기숙사 침실 책상에 앉아 정갈한 글씨로 편지를 썼다.
할아버지께.
오늘도 편안하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호그와트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소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이애건 앨리에서 일부러 자리를 비우셨던 겁니까? 이 빗자루는 지금 나온 것 중 가장 빠르고 비싼 것이라고 친구가 말해주었습니다. 신경 써주신 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뛰어난 퀴디치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늘 말해주셨지 요.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뵙는 그날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유월 올림
유월은 편지를 곱게 접어, 올빼미에게 건네주었다. 날갯짓 소리가 멀어진 후 고요가 찾아왔다. 빗자루의 매끈한 표면을 만지며 유월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
유월은 새 빗자루를 타고 그리핀도르에게 승리를 연달아 안겨주었다. 슬리데린의 추격꾼, 리지는 이제 예선 일정이 나오면 한숨부터 내쉬었다. 모두 추격꾼 자리를 기피했다. 그 정도로 유월은 매서운 라이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엔 유월보다 길었던 그 빗자루는 이제 유월의 키보다 작았다.
친구들과 자신을 믿고 의지해주는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가끔 유월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부모님의 부재 때문일까. 디멘터가 나오는 악몽을 꿀 때마다 유월은 괴로웠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꼈다.
트리위저드 축제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유월은 학교 건물의 높은 테라스 구석에 홀로 앉아 파티장을 내려다보았다. 아래층의 무도회 홀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희미하게만 닿았다. 밤하늘의 별빛 아래, 유월은 혼자였다.
그때,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덤스트랭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유월을 뚫을 듯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텁텁한 가죽과 숲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야생적이면서도 어딘가 정돈된 느낌.
그 시선이 자신을 천천히 훑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유월의 심장이 퀴디치 경기에 나갔을 때 만큼이나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낯설고 강렬한 감정이었다
텅 비어 있던 마음이 무언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